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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31 "(칼럼) [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 보다]작가들만 모르는 것" _ 경향신문 (19.03.22.)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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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설 #31 "(칼럼) [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 보다]작가들만 모르는 것" _ 경향신문 (19.03.22.)

Stan Lee 2019. 3. 23. 0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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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기사 : [칼럼] [홍경한의 예술산책-깊이 보다]작가들만 모르는 것 / 경향신문 / 2019. 03. 22.


기사 링크 : http://bit.ly/2TWMked



   오늘날 한국의 예술가들이 독창성을 잃고, 획일적인 작품만을 양산한다고 비판하는 글입니다. “공간을 채우고 있는 작품의 태반은 비릿한 돈 냄새와 물감이 뒤범벅된 것들”, “취향에 읍소하기 위해 노골적으로 미소 짓는 작품들”, “‘예술적’일 수는 있어도 결코 ‘예술’은 될 수 없는 상품”, “국적불명의 염속예술” 등과 같은 거친 표현을 쓰며 작가들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미술평론가이자 전시기획자인 저자가 물론 우리 예술계에 대해 훨씬 더 잘 알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칼럼을 읽으며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첫 문단 부터 시작해서 글 내내 작가들의 작품이 획일적이다, 동시대성을 읽을 수 없다, 보잘 것 없는 것에 이데올로기를 부여한다, 전문 직업인으로서의 고유한 메티에(metier)를 찾아내기 쉽지 않다 등 비난을 퍼붓다가, 마지막 문단에서 갑자기 ‘나는 예술가의 삶을 존경한다’며, 생존의 문턱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들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고 그들이 진정한 의미로서의 ‘예술’을 하기를 바란다며 글을 마칩니다. 


   실제로 우리 작가들이 획일적인 작품을 만드는지 아닌지는 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당장 오늘날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과연 예술가들이 저자가 말한 것처럼 ‘사회적 의제로써 예술에 주목하고, 더 나은 인류의 미래를 제시하는 예술의 가치완성’을 수행할 여유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특히나, 글 마지막을 보면 저자 역시 예술가들이 생존의 문턱에서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현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회구조적인 문제는 배제한 채 모든 책임을 예술가들에게 돌리고 비난하는 태도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또한 그들이 당장 먹고 살기 급한데, 저자가 이야기하는 더 나은 인류의 미래를 제시하는 예술을 생각할 만한 여유가 있을지 의문이네요.


   과연 우리 사회가 예술가들이 생계에 대한 걱정 없이 마음 놓고 그들이 추구하는 예술을 할 만큼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지 먼저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예술가들이 그들의 사회적 의제로써의 예술에 집중하려면, 그들이 오롯이 예술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 대한 조성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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