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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눈먼 자들의 도시" - ★★★★☆

Stan Lee 2019. 3. 8.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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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 :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해냄


다 읽은 날짜 : 2019년 1월 16일, Ridibooks


서평 작성일 : 2019년 1월 17일, 스타벅스 홍제점 / 1월 28일, 스타벅스 한양대점 / 스타벅스 홍제점



< 읽게 된 동기 >


2019년 STEW 독서모임 첫 번째 지정도서. 몇년 전 영화화 되기도 했고,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읽어봐야지 하고 예전에 구매해 놓았다가, 이번 기회에 처음 읽게 되었다. 



< 한줄평 및 별점 >  ★★☆ ( 4점 / 5점 )


본능 앞에서 한없이 무너지는 인간에 대한 저자의 날카로운 고발. 

나라면 과연 어떻게 하였을 지 끊임 없이 성찰하며 읽었고, 우리 ‘눈’의 소중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



< 서평 >


   <눈먼 자들의 도시>. 몇년 전에 영화화 되면서 국내에서 화제가 되기도 하였고,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읽어봐야지'라는 생각에 진작 전자책을 구매해 놓았다가, 이번 STEW 독서모임 지정도서로 선정되어 드디어 읽게 되었다. 작년 상반기 ‘해리포터’ 이후 간만에 보는 소설이라 그런지,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는 제목 그대로 한 남자가 운전을 하며 신호를 대기하던 중 갑자기 눈이 멀게 되면서 시작한다. 이후 모든 세상이 하얗게 보이는 이 ‘백색 질병’은 전염병이 되어 천천히 온 도시를 집어삼키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인간성 상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 되돌아 볼 수 있었으며, 소설을 읽으며 만약 나라면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지 스스로 끊임 없이 되물으며 읽었다. 또한 눈이 보인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소중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내용이 이렇다 보니, 소설을 읽는 내내 참으로 불편하고 씁쓸했다. 우리 몸에서 단 한 부분, ‘눈’이 보이지 않을 뿐인데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던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인간들이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지 저자는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특히나 씁쓸했던 것은, 과연 나라고 별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결국 우리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 아니 모든 생명체들의 가장 근본적이고 강력한 욕구는 ‘생존’이다. 이러한 생존 욕구는 다른 모든 욕구보다 우선하며, 이는 나 역시 예외일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분명 달랐을거야'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없었기 때문에, 소설을 읽으며 어느 누구도 쉽사리 욕을 할 수가 없었다.


   소설 곳곳에서는 인간성이 상실된, 여러가지 인물들이 등장한다. 눈이 먼 남자를 집까지 데려다 주고 차를 훔쳐 달아난 남자, 전염을 막기 위해 시설도 갖추어지지 않은 폐정신병원에 격리 조치부터 하고 보는 정치인들과 무차별 살상을 저지르는 군인들, 병동 내에서 폭력을 앞세워 약탈을 일삼고 인권을 유린하는 무리들, 일부 사람들이 마트를 점거하고 먹을거리를 독차지하자 거기에 불을 지르는 이기적인 사람들, 먹을거리가 발견되자 지하실로 몰려가다가 집단으로 떼죽음을 당한 사람들 등등. 소설을 읽으면서 당연히 머리로는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입으로는 욕을 했지만, 만약 내가 저 상황이었다면 안 그랬을까?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이러한 인간성 상실 외에도, ‘눈’을 잃자 우리 사회를 지탱해주는 모든 시스템이 붕괴한다. 소설의 뒷부분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의사의 아내는 집 안의 수도꼭지에서 그 귀중한 액체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것이 문명의 결점이다. 우리는 집 안에 들어오는 수도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급수 밸브를 열고 잠그는 사람들, 전기가 필요한 급수탑과 펌프, 부족분을 확인하고 여유분을 관리할 컴퓨터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곤 한다. 그리고 이런 모든 일을 하는 데는 사람의 눈이 필요하다는 것을."


   단지 ‘눈’이 보이지 않을 뿐인데 수 천년에 걸쳐 우리 인류가 이룩한 모든 문명 시스템이 유명무실해진다. 실명은 우리가 평소에 정말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 - 가령, 집에 도착해서 불을 켜고 손을 씻는 행위 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우리 몸에서 눈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되는 장면이었다.


   그렇다면 저자가 결국 이 소설을 통해서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개인적으로는 이에 대한 해답을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찾을 수 있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의사와 그의 아내는 이런 말을 주고 받는다.


"왜 우리가 눈이 멀게 된 거죠. 모르겠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응, 알고 싶어.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 바로 이 말이 저자가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사실 소설에서 나오는 여러 비인륜적인 장면들은 다소 과장된 면이 있긴 하지만 오늘날에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씁쓸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 바로 이때문인 것 같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약자들을 대상으로 한 비 인륜적인 범죄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성 범죄는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으며, 보험금을 타기 위해 가족을 죽이는 등 상상을 초월하는 범죄 역시 종종 보도된다. 그러나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범죄를 외면한다. ‘내 일이 아니니까’, ‘먹고 살기 바쁘니까’ 등등 변명거리는 많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눈이 멀어버린 눈먼 도시에서는 이러한 범죄가 일상이 되고, 그 범죄가 나한테까지 미치자 사람들은 그때서야 움직이기 시작한다. 바로 이러한 부분이 저자가 비판하고 싶었던 부분이 아니었을까? 


   또 우리는 눈이 보이기 때문에 얻는 수많은 이점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생각할 수가 없다는게 더 맞는 표현인 것 같다. 태어날 때부터 수도와 전기가 있었고, 엘레베이터를 타고 높은 건물에 올라갔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이 ‘눈’이 보이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의사 아내의 말처럼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소설에서는 희망적인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이 눈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최소한의 도덕성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눈먼 도시에서 유일하게 눈이 멀지 않은 의사의 아내이다. 본인 눈은 멀쩡한데도 남편을 따라 정신병동으로 들어와 주변 사람들을 챙기고 끊임없이 희생을 한다. 


   특히 인상깊었던 부분은 바로 폭력배 두목을 가위로 찌른 장면이었다. 본인은 폭력배들에게 끌려가 인권을 유린 당해도, 같은 병동 사람들의 식량을 얻기위해 꾹 참았지만, 같은 범죄가 다른 여성들에게 자행되는 모습을 보자 결국 외면하지 못하고 폭력배 두목을 살해한다. 이외에도 늙은 노파와 따라다니는 개를 위해 소중한 식량을 나누어주고, 남편보다 어린 아이를 먼저 챙기는 등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의사의 아내는 인간성을 잃지 않는다. 


   같은 병동의 주인공들 역시 마찬가지다. 최소한의 인간성을 지키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소설 내내 병동 사람들은 서로를 위하고, 양보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특히 주인공들이 비가 오자 빗물에 샤워를 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데, 바로 이 장면이 동물과는 다른, 인간성을 지키고자 하는 모습을 잘 보여 준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늙은 남자는 아무도 눈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부끄러움을 느꼈는지 혼자 씻고 싶어한다.


   이처럼 소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 저자는 ‘인간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모든 도시 사람들이 눈이 먼다는 다소 극단적인 상황을 가정하여 다양한 메시지를 던져 준다. 모든 사회 시스템이 붕괴하고 폭력과 살인, 무질서가 난무하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의사의 아내로 대표되는 병동 사람들은 최소한의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모습을 통해 소설을 읽는 사람들이 평소 눈이 보이는 것에 감사하고, 그 동안 외면했던 다양한 현실을 직시하고 행동함으로써 우리 사회가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 인상 깊은 문구 >


“자신의 잘못을 얼버무리려 하는 사람은 결국, 가혹하게도, 자신이 받아 마땅한 벌의 두 배를 받게 된다.”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먼저 그 결과를 생각해 본다면, 곧 즉각적인 결과, 확률이 높은 결과, 가능한 결과, 상상할 수 있는 결과를 차례대로 진지하게 생각해 본다면, 우리 머리에 처음 떠오른 생각에 가로막혀 절대 어떤 한계 이상으로 나아가지 못하리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금 이 시간에 이 낡고 황폐한 건물 어딘가의 은신처에서는 도둑들이 예기치 않게 두 배, 세 배로 늘어난 식량으로 차갑긴 하지만 우유를 섞은 커피와 비스킷과 마가린을 바른 빵으로 배를 불리고 있을 텐데, 예의를 존중하려던 사람들은 그 이 분의 일이나, 삼분의 일, 심지어 그것조차도 안 되는 양으로 만족해야 하다니.”


“반면 저 바깥 도시에 있는 눈먼 사람은 얼마나 괴로울까. 그래, 정말 괴로울 것이다. 길을 가다 걸려 넘어지기 일쑤이고, 모두들 그를 보기만 하면 달아날 것이고, 그의 가족은 공황에 빠져, 그에게 다가가는 것조차 두려워할 것이다. 어머니의 사랑, 자식의 사랑, 그런 것은 이미 전설이 되었을 것이다.”


“사실 문제는 조직이다. 첫 번째가 먹을 것이요, 그 다음이 조직이다. 둘 다 사는 데는 불가결한 것이다.”


“한 가지 방법이 있소, 모든 병실을 개방하는 거요. 그렇게 되면 보균자들이 맹인들과 직접 접촉하게 되는데. 어차피 보균자들은 조만간 눈이 멀 가능성이 아주 높소, 게다가, 상황이 이 지경이라면, 우리 모두가 감염될 판이오.”


“최신 소식을 하나 알려드릴까, 아까 말했던 대령이 눈이 멀었소. 지금은 아까 그 기발한 발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구려. 별로 궁금할 것도 없소, 이미 자기 머리에 총을 쏘아 자살했으니까. 그 사람, 태도 하나는 일관성이 있군. 군은 늘 모범을 보일 준비가 되어 있소.”


“아, 잊기 전에 하나 이야기해 두어야 할 것이 있다. 모든 사격이 공포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승합차 운전사 하나가 눈먼 재소자들과 함께 들어가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자기 눈은 아주 잘 보인다고 항변했다. 그 결과, 삼초 뒤, 죽으면 눈도 먼다는 보건부의 이야기가 증명이 되고 말았다.”


“오후 네 시였다. 그러나 사실 기계는 그런 데 관심이 없다. 시계는 일에서 십이까지 움직일 뿐이고, 나머지는 그저 인간의 정신 속에 있는 관념일 뿐이다.”


“사람들은 단순한 버스 사고에 대해서 걱정할 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사실 그 사고는 버스의 브레이크가 고장나 일어난 사고의 경우와 별반 다르지 않게 취급되었다. 그러나 이틀 뒤에는 바로 그런 브레이크 고장으로 인해 다른 사고가 발생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거꾸로 사고 버스의 운전사가 눈이 멀었다는 소문이 돌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이런 식으로 진실이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거짓으로 위장을 하기도 하는 법이다.”


"그곳에 있으면 악당들의 불의의 행동으로 그의 정직한 마음에 적개심이 불타오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굶지는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인간의 이성과 비이성은 어디에서나 똑같은 것 아닌가."


"동시에 이 메시지를 듣는 사람들이 그들에게 내려진 금번 격리 조치가 개인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공동체의 나머지 구성원들과의 연대에 기초한 것임을 명심하고, 정직한 시민들로서 책임을 다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기억이란 어떤 장소의 이미지를 생각나게 해주는 것뿐이지, 우리가 그 장소에 이르는 길을 생각나게 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의사의 아내는 집 안의 수도꼭지에서 그 귀중한 액체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것이 문명의 결점이다. 우리는 집 안에 들어오는 수도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급수 밸브를 열고 잠그는 사람들, 전기가 필요한 급수탑과 펌프, 부족분을 확인하고 여유분을 관리할 컴퓨터들이 필요하다는 것을 잊곤 한다. 그리고 이런 모든 일을 하는 데는 사람의 눈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런 상황에서는 보통 눈에 그런 표정이 드러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상례인데, 사실 이런 표현은 근거가 없다. 눈에는, 엄격히 말해서 눈에는, 아무런 표정이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눈알을 뽑아냈을 때도, 그것은 그저 아무런 활력이 없는 두 개의 둥그런 물체에 불과하다. 여러 가지 시각적 웅변과 수사를 전달하는 것은 눈꺼풀, 속눈썹, 눈썹이다. 사람들은 보통 눈이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전에 지니고 살았던 감정, 과거에 우리가 사는 모습을 규정하던 감정은 우리가 눈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요, 눈이 없으면 감정도 다른 것이 되어버려, 어떻게 그렇게 될지는 모르고, 다른 무엇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아가씨는 우리가 눈이 멀었기 때문에 죽은 것이라고 말했는데, 바로 그게 그 얘기야."


"우리는 기생충처럼 사모님 피를 빨게 될 거예요. 우리가 볼 수 있을 때도 그런 사람들은 많았어."


"그러나 우리가 심한 고난을 당해 통증과 괴로움에 시달릴 때, 그때는 우리의 본성이 지닌 동물적 측면이 가장 분명하게 부각된다."


"아래층의 노파는 천천히 창문을 열었다. 그녀는 누구에게도 자기가 그런 감상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거리에서는 이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은 이미 떠났다. 거의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는 이곳을 떠나버렸다. 노파는 기뻐해야 마땅했다. 이제 닭과 토끼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어 갖지 않아도 되니까. 그녀는 기뻐해야 마땅한데,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다. 그녀의 멀어버린 두 눈에 눈물이 고인다. 처음으로 그녀는 자신이 계속 살고 싶은 이유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러나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답이란 필요하다고 해서 꼭 나타나는 것은 아니니까. 유일한 답은 답을 기다려보는 것일 경우가 많다."


"무엇이 옳으냐 무엇이 그르냐 하는 것은 그저 우리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해하는 서로 다른 방식일 뿐이예요, 우리가 우리 자신과 맺는 관계가 아니고요."


"말이란 것이 그렇다. 말이란 속이는 것이니까, 과장하는 것이니까. 사실 말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우리는 갑자기 튀어나온 두 마디나 세 마디나 네 마디 말, 그 자체로는 단순한 말, 인칭대명사 하나, 부사 하나, 동사 하나, 형용사 하나 때문에 흥분한다. 그 말이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살갗을 뚫고, 눈을 뚫고 겉으로 튀어나와 우리 감정의 평정을 흩트려 놓는 것을 보며 흥분한다. 때로는 신경마저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돌파당하고 만다. 사실 신경은 많은 것을 견딘다. 모든 것을 견딘다. 갑옷을 입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의사의 아내의 신경은 강철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인칭대명사 하나, 부사 하나, 동사 하나, 형용사 하나 때문에, 이런 단순한 문법적 범주들 때문에, 단순한 부호 때문에 눈물을 흘리고 만다."


"다른 사람들과 사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야,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운 거지."


"만일 그 눈마저 언젠가 소멸해 버린다면, 그런 생각은 하고 싶지도 않지만, 그럼 우리와 인류를 연결시켜 주는 끈이 끊어지고 말겠죠, 그렇게 되면 마치 허공에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것과 같은 거예요, 영원히, 모두 눈이 먼 채로."


"어쨌든 달라지지 않는 것은 꼭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악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것은 세상이 시작된 이래 대를 이으며 계속되어 온 일이다."


"불행이 모두에게 닥쳐도, 늘 남들보다 더 심하게 그 불행을 겪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왜 우리가 눈이 멀게 된 거죠. 모르겠어,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고 싶어요. 응, 알고 싶어. 나는 우리가 눈이 멀었다가 다시 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눈이 멀었고, 지금도 눈이 멀었다고 생각해요. 눈은 멀었지만 본다는 건가. 볼 수는 있지만 보지 않는 눈먼 사람들이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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